에드워드 도서관(Edward Library)
리처드 도킨스 책 읽는 순서, 『이기적 유전자』부터 『만들어진 신』까지 4단계 로드맵 본문
리처드 도킨스는 1976년 『이기적 유전자』에서 우리 인간을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진 '생존 기계'라고 불렀습니다. 이 주장은 지금도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동시에 매료합니다. 그래서 도킨스는 과학 교양서를 읽기 시작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만나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이기적 유전자』를 처음 읽었을 때는 기록을 남기지 않아서, 3년쯤 지나자 무슨 내용이었는지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읽고 서평을 남겼고, 그 뒤로 『눈먼 시계공』, 『확장된 표현형』, 『만들어진 신』까지 이어서 읽었습니다.
네 권을 읽고 나서 느낀 것은, 도킨스는 출간 순서보다 난이도 순서로 읽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확장된 표현형』은 도킨스 스스로 최고작으로 꼽은 책이지만, 처음부터 펼치면 거의 전공서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제가 읽은 경험을 바탕으로 도킨스 책 읽는 순서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읽기 전에: 도킨스의 핵심 한 줄
도킨스의 생각을 아주 간단하게 줄이면 이렇습니다.
- 진화의 주인공은 개체나 종이 아니라 유전자입니다.
- 생물은 유전자가 자신을 복제해 다음 세대로 넘기기 위해 만든 '운반체'입니다.
- 그런데 인간은 유전자의 명령을 이해하고, 때로는 거스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마지막 줄이 중요합니다. 도킨스를 읽으면 인간이 허무하게 느껴질 것 같지만, 오히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 한 줄을 알고 읽으면 어떤 책을 펼쳐도 길을 잃지 않습니다.
1단계. 출발점 — 『이기적 유전자』
추천 도서 『이기적 유전자』(을유문화사)
도킨스의 모든 책은 이 책에서 출발합니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생명을 바라보는 방법을 처음으로 알려 주는 책이라, 이 책 없이 다른 책을 읽으면 자꾸 앞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분량은 적지 않지만 예시가 많아 생각보다 잘 읽힙니다.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붙잡고 있던 대목은 세 가지였습니다.
- 해충도 생태계의 일부다. 해충 하나를 없앴더니 다른 해충이 더 번성했다는 대목에서, 참새를 없애려다 대기근을 부른 중국의 제사해 운동이 떠올랐습니다. 인간에게 해로운 것과 생태계에 필요 없는 것은 다릅니다.
- 암컷의 두 가지 선택. 남성다운 수컷을 고르는 전략과 가정을 지키는 수컷을 고르는 전략. 이 대목을 읽으며 두 딸이 언젠가 데려올 사람은 건강하고 가정적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아빠다운 생각을 했습니다.
- 먼저 협력하고, 상대를 따라 하라. '팃포탯(TFT)' 전략은 처음에는 협력하고, 그다음부터는 상대가 한 대로 돌려줍니다. 유산을 두고 다투다 변호사 비용과 세금만 늘어나는 형제를 떠올리면, 결국 협력이 둘 모두에게 이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단계의 목표는 '유전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감각을 얻는 것입니다.
제가 읽은 글 : 이기적 유전자
2단계. 진화를 눈으로 보기 — 『눈먼 시계공』
추천 도서 『눈먼 시계공』(사이언스북스)
『이기적 유전자』가 '무엇이' 진화하는지를 설명했다면, 『눈먼 시계공』은 '어떻게' 진화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정교한 시계를 보면 시계공이 있다고 생각하듯, 정교한 생명을 보면 설계자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도킨스는 작은 변화가 오랜 시간 쌓이는 자연선택이 바로 그 시계공이며, 다만 앞을 보지 못하는 '눈먼' 시계공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다시 느꼈습니다. 우주가 수천억 개의 은하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 앞에서, 지구의 모든 생물은 하나의 순환 고리로 이어져 있고 인간도 그 일부일 뿐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더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화와 창조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믿음이 다릅니다. 저는 과학 쪽에 서 있지만, 각자의 믿음은 존중합니다. 이 책은 그런 논쟁보다 '작은 변화가 쌓이면 무엇이 가능한가'를 보여 주는 책으로 읽으면 좋습니다.
제가 읽은 글 : 눈먼 시계공
3단계. 도킨스가 꼽은 최고작 — 『확장된 표현형』
추천 도서 『확장된 표현형』(을유문화사)
도킨스는 이 책을 자신의 최고 작품으로 꼽았습니다. 『이기적 유전자』의 한 장인 '유전자의 긴 팔'을 한 권으로 확장한 책으로, 유전자의 영향이 내 몸을 넘어 다른 생물과 환경까지 뻗어 나간다는 내용입니다. 다만 원래 학자들을 위해 쓴 책이라 앞의 두 권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에 두었습니다.
저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광견병 바이러스 이야기였습니다. 바이러스가 숙주를 사납게 만들어 물게 하고, 그 침을 통해 자신을 퍼뜨린다는 것. 감기 바이러스가 기침을 일으키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코로나 때 손 씻기와 마스크만으로 감기 환자까지 줄었던 것을 떠올리면, 결국 가장 좋은 방어는 위생이라는 당연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 책은 모든 내용을 이해하려 하지 말고, "유전자의 팔이 어디까지 뻗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 하나만 들고 읽어도 충분합니다.
제가 읽은 글 : 확장된 표현형
4단계. 과학자가 바라본 종교 — 『만들어진 신』
추천 도서 『만들어진 신』(김영사)
마지막은 도킨스가 과학자의 눈으로 종교를 바라본 책입니다. 앞의 세 권과 달리 생물학보다 사회와 신앙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서, 진화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 책은 선택으로 남겨 두어도 됩니다. 종교에 대한 비판이 강한 책이라, 신앙이 있는 분은 불편할 수 있다는 점도 미리 말씀드립니다.
제가 이 책에서 붙잡은 것은 종교 자체보다 맹목적인 믿음의 위험이었습니다. 십자군 전쟁이나 마녀사냥처럼, 지나친 믿음이 광기로 변하면 사람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을 저지릅니다. 적당한 믿음은 나를 돌아보게 하지만, 맹목적인 믿음은 생각을 멈추게 합니다. 이것은 종교뿐 아니라 투자나 정치처럼 무언가를 강하게 믿게 되는 모든 영역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읽은 글 : 만들어진 신
도킨스 책 읽는 순서, 한눈에 정리
| 단계 | 책 | 첫 출간 | 난이도 | 목표 |
| 1 | 『이기적 유전자』 | 1976 | ★★☆ | 유전자의 눈으로 세상 보기 |
| 2 | 『눈먼 시계공』 | 1986 | ★★☆ | 자연선택이 작동하는 방식 이해하기 |
| 3 | 『확장된 표현형』 | 1982 | ★★★ | 유전자의 영향이 어디까지 뻗는지 보기 |
| 4 | 『만들어진 신』 | 2006 | ★★☆ | (선택) 맹목적 믿음에 대해 생각하기 |
도킨스 다음에는
도킨스로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를 보았다면, 같은 질문을 다른 방향에서 이어 가는 과학자들이 있습니다. 에드워드 윌슨은 유전자를 넘어 인간의 문화와 협력을, 미치오 카쿠는 과학이 바꿀 인간의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세 사람을 이어서 읽는 방법은 제가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내 인생을 설명해 줄 3명의 과학자: 도킨스의 과거, 윌슨의 현재, 카쿠의 미래
마치며
도킨스를 읽으면 처음에는 인간이 유전자의 꼭두각시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네 권을 다 읽고 나면 오히려 반대의 생각이 듭니다. 유전자의 명령을 이해할 수 있기에, 인간은 그 명령과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것.
네 권 중에서 저는 『이기적 유전자』가 가장 편하게, 그리고 가장 재미있게 읽혔습니다. 특히 팃포탯(TFT) 이야기를 읽으며 사람은 결국 협력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더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이 앞서기보다 이성을 붙잡고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도요. 유전자가 시키는 대로가 아니라 내가 고르는 대로 살 수 있다는 것, 제가 도킨스에게서 배운 가장 큰 교훈입니다.
처음부터 가장 어려운 책을 붙잡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기적 유전자』 한 권으로 시작해 하나씩 이어 가다 보면, 과학이 생각보다 따뜻하게 인간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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